여름이의 일기+연습일지 2016.12.22 15:56

진실희
댓글 : 3 조회 수 : 474 추천 수 : 0

안녕, 안녕은 끝났지만 아직 한여름을 놓지 못하여 심란해하고 있는 15기 진실희입니다.

부족한 점이 많았지만 열린 마음으로 응원해주시고, 같이 울고 웃어주신 관객 여러분 정말 정말 감사드려요.


저는 모든 공연에 연습 일지를 적습니다.

그리고 굳이 분석 과정에서 의무사항이 아니더라도 전사나 후사를 써둡니다.

(상상력이 부족한 배우라 그런 거 같아요 ㅋㅋ)


오늘 그 걸 들춰보니 웃기기도 하고 벌써 이렇게 먼 일이 되었나 싶기도 하네요.

제 나름 빠져나오는 의식(?)의 일환으로 여름이의 일기와 연습일지를 올려봐요.

공연 재밌게 보신 분들이라면.... 이런 비하인드에도 피식 하실지 모르죠.


다시 한 번 스텝여러분, 관객여러분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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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안녕. 여름버전 연습일지>


9/14 송영민, 진실희에게 여름을 제안하다.


9/24 김가영과 공연을 보고 개 쳐 울다. 진실희 여름 수락. 김가영, 합류 결정하다.


9/30 송영민과 진실희, 이봉우에게 동욱을 제안하다. 단칼에 까이다.


10/3 츤데레 이봉우, 동욱을 뒤늦게 수락하다.


10/4 구본석, 조지를 수락하다.
       송영민, 능력자인 가영이에게 연출을 부탁할지 란을 부탁할지 100만번 고민하다 란을 부탁한다. 김가영 란 수락하다. 송영민, 남주 겸 연출을 마음먹다.


11/3 첫 연습. 리딩 할때마다 이렇게 슬프면 어떡하지 걱정하다.


11/7 대본 분석 시작. 여름이는 환각인가 귀신인가에 대해 고민하다 환각으로 결론 내리다. 다만 마지막 장면은 귀신인 걸로.


11/8 대본 분석 계속. 여름과 태민은 어쩌다 섹스리스 부부가 되었는지 생각해 봄. 태민이 아이를 갖기 싫어해서 도망다는 것 같음. 이렇게 생각하니 진짜 비참해지다.
누군가 지나가는 말로 "별로 여름이 이미지랑 안어울린다"라고 말해서 자괴감에 죽기 직전까지 술 먹고 뻗어버림.


11/9 전날의 여파로 "나는 똥배우"라는 결론을 내리고 방황. 동욱이가 "우리는 풋내기가 아니예욧"이라고 말해서 좀 정신 차림.


11/12 음향을 곁들여 리딩. 개 쳐 울었음. 이때까진 운 게 잘한 건 줄 암.


11/13 태민과 여름의 '오키나와 마지막 사진'을 잠실역 트리 앞에서 찍음


11/17 드디어 동선. 손과 발을 자르고 싶어짐. 단이 있을거라 상상하고 연습하는 것이 쉽지 않음.


11/18 환각인 여름이에게 자아를 부여하지 않으면 도저히 연기가 안될 것 같아서 전사를 쓰기로 함. 그런데 전사보다 후사가 중요한 것 같아서 후사를 씀. 후사를 쓰고 여름이는 무대에서 울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깨달음. 깝깝해짐.


11/20 ......당근을 말려 차를 끓이려다 시간이 없어서 그냥 당근을 넣고 우려 봄. 아무 맛도 안나고 삶은 당근을 먹게 되었음.


11/21 태민 여름 개인연습. 전반부 디테일 집중 연습. 권태로운 부부 연기를 하는 것 치고 여름이가 너무 애교가 많다는 것을 깨달음. 애교 발랄을 깎고 지침과 잔소리 대마왕을 첨가 해 봄. 잘 안됨......


11/22 태민이가 엄청난 라면펌을 하고 등장. 구불구불 물결치는 펌을 원했는데......... 집중 안될까봐 걱정 함-_-


11/25 긴 출장을 앞두고 있기에 제발 런 돌자고 송연출 들들 볶음. 결국 돌았고 상처만 남음. .....러닝타임 두시간 반-_-


11/27 리플렛 사진 촬영. 태민이의 사진을 찍어줌. 송연출 리플렛 만드느라 런 포기. 때릴뻔 함.


11/28-12/2 출장. 여름이 빈자리 보고 대사치는 태민이 사진을 란이 보내줌. 울컥.


12/2-4 무대 셋업. 승교오빠 보한이 송연출 무슨 건축학 개론남(ㅋㅋ)들인줄. 일은 많은데 별로 도와줄 일이 없어서 미안해 함. 작업이 늦어지니 칼날마냥 날카로워져서 스텝들 밥도 안먹이고 공구만 잡는 송연출을 달래 밥타임을 갖고 안도함. 아.... 젠장 난 빼박 여름이가 되어버렸구나, 말렸구나 싶음.


12/5 송연출이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아 조연출이 되어야겠다고 마음 먹음. 소품리스트와 의상 컨펌일, 리플렛을 챙김. 칭찬 못받음. 연기나 잘하란 소리 같음.
태민이와 둘이 남아 밤 새 벽 페인트 다 칠함. 옷 두개 버림-_-


12/7 송연출 고열 동반한 몸살. 여름이 위경련으로 응급실 실려감. 갑자기 란이 무대 잔업을 지휘하여 깔끔하게 다 해버림.


12/8 란 각종 질병에 시달리기 시작.


12/19 란의 병세가 심각하여 결석. 간호의 목적으로 란 집에서 자기로 결정......... 했는데 별 도움은 못 됨.


12/10 아침에 란 끌고 병원 감. 정모. 여름 응급실 또 감.


12/11 송연출과 아침부터 부족한 소품 구입하러 다이소 투어. 드디어 첫 런다운 런. 구경꾼들이 웃어주고 울어주어 큰절할 뻔. 무대에 계속 올려둘 여름이 영정사진(?) 촬영.


12/12 여름이 가사집을 채우고 스크랩북을 만듦.


12/13 여름이가 엔딩에서 집을 둘러보는 액션음 빼기로 함. 여름이는 다시 안나타날 것이 아니라 언제까지나 태민이를 지켜보고 있다는 분석을 택했기 때문. 끝까지 관객에게 내 표정을 보여주지 못한다는 점이 화가남. 하지만 아무래도 분석이 맞는 것 같아서 수용키로. 잘한 짓 같음.
건강 최악. 하고 있는 모든 통번역 일을 스톱 시킴. 2월까지 쉬기만 하기로 작정.


12/14 여름이는 절대로 울어서는 안된다는 걸 다시 한 번 깨달음.


12/16 리허설. 리허설 씩이나 되서야 엔딩에서 여름이 감정이 얼마나 폭발하는지 알게 됨. 내 감정은 폭발했는데 극이 끝나버리다니. 모두들 나를 실컷 때리고 불끄고 나가버린 기분.


12/17 공연 첫 날. 리허설이 되어서야 알아버린 이 폭력성에 비틀댐. 뭐 어떻게 연기 했는지도 모르겠음.


12/18 막공. 여름이가 어차피 환각이라면, 태민이의 판타지니까 좀 더 예뻐도 되지 않나? 라는 생각이 이제야 듦. 뺐던 애교를 다시 부리고 가끔 아련하려고 노력.
태민이가 날 잡고 세상에서 가장 달콤한 말들만 들려 주는데 행복해서 기절할 뻔. 근데 그래놓고 내가 안보임............... 또 폭발..... 극이 영원히 끝나버림.


뒷풀이고 뭐고 명치에 걸린 울음을 어떻게 할 수가 없어서, 연습실에 혼자 돌아와 두시간 동안 개 쳐 울었음. 술 대신 울음을 택한 건 잘 한 일이라고 생각.

물론 지금까지 나 나름의 베스트 멍석 공연은 있었지만, 이렇게 힘든 공연도, 이렇게 행복한 공연도 없었음. 추스리지 못해서 뒷풀이때 고생한 스텝들, 동료 배우들과 많은 얘기를 나누지 못한 것이 아쉬움.



<여름이의 일기 (한여름 후사)>


죽어보니 죽은 자들의 세계에도 나름 룰이 있다는 걸 알았다. <사랑과 영혼>을 생각하면 쉽다. 물론 구름계단이 펼쳐져 있지는 않지만, 아무튼 일반적으로 죽는 순간 영혼은 이 세계를 뜨게 되어있다. 그런데 내 경우 뇌사가 발생했기 때문에 뭔가 시스템의 교란(?) 같은 것이 온 것이다. 나는 완전히 사망하기 전에 이미 몸을 빠져나와 있었으니까 말이다.

  처음 눈에 들어온 장면은 아이라인이 번진 채 엉망으로 울고 있는 아빠의 모습이었다. 뒤이어 의료진과 함께 나타난 그의 모습이 보였다.


"가족의 동의로 연명장치를 제거하겠습니다. 마지막 인사 하십시오.”

아침에 국수집에서 흘린 국물 자국이 남은 셔츠를 입고 있는 그.

아빠가 "여름아, 미안해. 사랑해."라고 외치는 동안,

남아있는 정신력을 애써 긁어 모으고 있는 그의 눈이 보였다.

새벽녘에 사진 작업할 때도 저 눈이다.

바닥을 감히 점칠 수 없는 심연 같은 저 눈. 나는 살면서 얼마나 저 눈에 반해왔던가.


"여름아, 안녕."

그가 쥐어짜듯 인사를 마치자 곧 연명장치는 제거되었고,

흰 천이 덮인 나를 뒤로 하고 그는 나가버렸다.

아무래도 주변에 내가 보이는 사람은 없는 것 같고,

그를 따라가는 것 말고는 달리 취할 수 있는 행동이 없었다.

그래서 그를 따라다니기로 했다.


그는 울지 않았다. 죽은 내 몸과 함께 한국으로 돌아갈 수 있는 항공편을 알아보고,

장례 절차를 알아보고, 지인들에게 조용히 연락을 했다.

장례식때도, 화장터에서도, 납골당에서도 울지 않았다.

아빠와 동욱씨는 놀랍도록 침착한 그를 보고 처음엔 다행이라고 여기는 것 같았다.


하지만 마누라인 내 눈에만 보이는 것들이 있다.

아빠나 동욱씨 앞에선 좀 먹는 척도 하지만 사실 거의 먹지 않고,

술과 담배가 늘어도 너무 늘었다는 것,

전혀 잠들지 않으며, 자꾸 혼자 있으려 하고,

결정적으로 목숨처럼 생각하던 필름들을 태웠고, 카메라를 처분하기 시작했다는 것.


저 사람, 죽을 생각이다.

그가 내 사진을 보며 맥주에 수면제를 타던 날, 난 그 앞에 나타나게 되었다.

어떤 메커니즘이 어떻게 작용했는지는 나도 전혀 모르겠다.

다만, 무너진 그를 보며 벌써 죽은 내가 또 죽기라도 할 것처럼 가슴이 아팠고, 그 순간 그가 나를 본 것이다.


아빠는 그에게 내가 환각이라고 했지만 글쎄...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다.

아무튼 난 세상에 없는 존재니까.

다만, 귀신인 내 입장에서 보면 이건 선택이다.

그의 행복은 나의 숙명이니까, 죽어서도 놓을 수 없는 숙명.


오늘, 그가 드디어 카메라를 다시 잡았다.

나는 다시 그의 사진 찍는 눈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아직 이승을 어떻게 떠나는지 그 방법을 알지 못하지만,

그러한 기회가 와도 나는 결국 이 집의 지박령(!)이 되는 길을 택하겠지.

.

.

.

그가 있는 곳이 바로 내 집이니까.


Signature by "진실희" profile
Comment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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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No Profile
    from. id:  김정곤 김정곤   on 2016.12.22 18:36   (*.217.228.226)
    실희야....흐어어엉...ㅠㅠ
  • No Profile
    from. 서준호   on 2016.12.23 01:19   (*.223.36.167)
    놓기가 쉽지않은갑네 ^^

    고생했어 ㅎㅎ
  • No Profile
    from. id:  벼리 벼리   on 2016.12.23 20:17   (*.38.10.183)
    언니 저 이거 넘 좋아요 넘 잘봤어요!!
    잘 보내쥬는 작업도 필요하대요ㅠㅠ..
    여름이 안녕, 태민이 안녀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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