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기 전에 기록하는
“갈매기가 전해준 편지”에 대한 작업일지
게릴라 작가 열전에 참여하는 다섯 팀의 작가와 배우들 첫 모임. 대본을 받아들고 드라이 리딩. 감정을 많이 쏟지 않았는데 대본을 읽어 내려가며 막판에 쏟아지던 울음. 첫 리딩 때까지만 해도 사고로 잃어버린 딸과 남겨진 엄마의 관계로만 생각하고 미처 눈치채지 못했었는데, 리딩이 끝난 후 재경이가 세월호 유가족들을 위로하고 싶은 마음에서 썼다 했다.
그리고 이 작품이 위로가 되리라 믿으면 그리 될 거라 생각한다 했다. 이 작품을 만난 게 다행이었고 동시에 두려워졌다.
고백하자면, 난 어떤 사건에 대한 반응이 느린 편이다. 이별을 하게 돼도 당장에 체감을 못한다. 멀뚱멀뚱 잘 지내는 듯 하다가 뒤늦게 아파하며 오래도록 기억하는 쪽이랄까. 세월호 사건이 터졌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온 국민이 우울증에 빠질 정도로 충격과 슬픔 그 자체였던 사고였지만, 부끄럽게도 난 온전히 체감하지 못하고 동감하지 못했다. 물론 영상을 보거나 기사를 접할 때면 함께 울긴 했지만, 역시나 ‘내 일’은 아닌 타인의 일이었고 내 생활을 유지 못 할 정도의 아픈 시간은 아니었던 것.
그래서, 그 말 못할 미안함과 죄스러움이 내 깊은 곳에 자리잡고 있던 차에 이번 작품을 통해 조금이나마 마음의 빚을 갚고 싶었다. 고해성사하는 마음으로, 아이들을 한 번 더 기억하고 유가족들을 미약하게나마 위로하는 마음으로 공연을 올리고 싶었다.
그랬기에 진심이 아니면, 마음을 다 쏟지 않으면, 할 수 없고 감히 해서도 안 되는 작품이라 생각했다. .
그랬기에 어쩌면 처음부터 끝까지 이기적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더 없이 게으르고 무능한 배우였을지도 모르겠다.
관객이 내 감정을 따라가고 함께 젖어들 수 있도록 급하게 울음이 터지지 말 것, 눈을 가리며 울지 않는 게 좋겠다, 조명 밖으로 주저 앉지 말라는 연출의 당연한 요구들을 들어주지 못했다. 그것들을 생각하는 순간, 혹여라도 가짜가 끼어들까봐. 그 순간 내 진심이 진심이 아닌 게 되어버릴까봐. 그게 제일 두려웠던 나머지 들을 수가 없었다.
어쩌면 난 다듬어지지 않은 마음 한 덩이만 계속 부여잡고 있었던 것 같다. 어떻게 하면 그 마음을 잘 다듬고 매만져서 관객에게 조금 더 매끄럽게, “잘” 전달할 수 있을지의 기술적인 문제까지는 미처 고려할 수 없었다. 그리고 전체 극과 대사 분석에 있어서도 너무 나태하고 안이했다. 시간이 없었다는 핑계를 대 봐도 역시나 비겁한 변명일 뿐이다. 한편으론 그게 아마도 지금의 내 위치, 내 한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래서 조금 씁쓸해지기도. 그래도 최소한 내 장점과 단점을 다시 한 번 확인했으니 너무 귀한 배움의 시간이었음에는 틀림없다.
여튼 우린 더 좋은 배우, 더 좋은 작가가 되어 만나자, 훗날을 기약했다.
감히 믿는다. 매 공연 전 250여명의 꽃이 되고 별이 된 아이들 이름을 하나하나 읊었던 내 속죄하는 마음, 그리고 그 모든 이름들을 대신해 “은재”를 불렀던 엄마 민숙의 마음, 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흐느끼던 어느 엄마의 영상에 내 오열이 부끄러워지던 마음, 오열하다 끝내는 실신하시던 또 다른 아빠의 영상에 내 작은 오열이 죄스러워지던 마음, 재경이가 이 글을 쓰고자 했던 처음의 그 마음, 힘들었던 사춘기 시절까지 녹여내며 끝까지 완성해 나간 마음, 대본 가득 빽빽하게 언니들이 주문하는 감정과 동작들을 적어가며 결국 은재를 만들어낸 미영이의 성실한 마음.
우리들의 마음마음들이 공기 중에 그저 흩뿌려지진 않았을 거라는 걸. 아이들에게 가 닿았고, 누군가를 위로하며, 우리 서로를 돌아보게 하였으리라는 것을, 나는 감히 믿는다.
맑은 연극 세상 멍석~
이번 작품을 통해서 시간을 함께 많이 나누진 못했지만 무대뒤에서 숨죽여 커튼 사이로 각 팀들의 공연을 보면서 저 나름대로 어떻게 공연에 임해야할지 많이 느꼈어요
민숙이라는 인물은 언니가 아니었으면 힘들었을거예요 멋진공연 고마와요!.!!